[책 리뷰] 부분과 전체

2021. 1. 28. 21:17

부분과 전체

지은이 :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옮긴이 : 유영미

펴낸곳 : 서커스출판상회

 

하이젠베르크가 말년에 기억을 더듬어가며 과거의 일들을 서술한 글이다.

목차를 보면 알 수 있듯이 하나로 이어지는 일관된 글이 아니라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이 나열되있는 묶음이다. 물리학 한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해서 나와 있는데 중요한 부분은 과학, 정치, 철학, 종교이다.

 

내가 양자역학을 공부할 때 항상 의아했던 점은 어떤 착상이나 발상에서 무언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지기라도 한 것같이 모든 것들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상대성 이론만해도 맥스웰 방정식과 뉴턴역학의 불일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나왔는데 양자역학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떤 착상을 했다는 것이 교과서에 나와는 있지만 별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부분과 전체에서 하이젠베르크와 보어가 무엇을 고민했고 어떻게 해결해나가는지가 부분적으로 나오기 때문에 양자역학을 공부하는 이들이 부분과 전체를 읽는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어와 하이젠베르크는 상보성을 자주 거론했는데 상보성은 밝혀낸 결과이고 그 과정 시작점을 보자면 하이젠베르크의 친구 로베르트의 말이 인상깊다.

 

원자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단순히 경험만을 논해서는 안 된다고 주의를 주고 싶었던 것뿐이야. 직접적으로 관찰할 수 없는 원자는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좀 더 기본적인 구조니까 말이야. 그래서 원자와 관련해 표상과 사물을 구분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을거야.”

 

이것이 양자역학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보다 정확하게 지금 시점의 지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우리 뇌는 사물에 대해서 시뮬레이션하도록 진화해왔다는 것이다. 원자에 대해서 바르게 인식하는 것이 수렵채집인의 생존에 무슨 도움이 되었을까? 사물로 인식하는 것만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물에 대한 수학적 기술이 고전역학이다. 따라서 수학과 고전역학과 우리의 물리적 직관은 잘 일치한다. 하지만 로베르트의 말 원자는 사물이 아니다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사물을 보는 눈으로 사물이 아닌 것을 파악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양자역학은 비직관적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원자는 사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파울리의 말도 이러한 맥락과 같다.

오늘날의 물리학이 실험물리학적 기술과 일상의 개념으로는 더 이상 적절히 서술할 수가 없는 자연의 영역으로 들어갔기 때문일 거야

일상의 개념이라는 것은 인간정도 크기의 스케일에서나 통하는 기술 즉 사물이라는 개념과 기술일 것이다.

 

이 밖에도 재미있었던 부분을 몇가지 들어보겠다.

 

○“예전의 권위와 미신과 싸우는 가운데 자연과학자들은 때로는 도를 지나치기도 했어요. 가령 하늘에서 종종 돌들이 떨어진다는 보고들이 있었어요. 몇몇 교회와 수도원에서는 그런 돌들을 성물로 보관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18세기에 이르러 그런 보고들이 미신으로 치부되면서 과학자들은 수도원에 그런 가치 없는 돌들을 버리라고 권고했어요. 심지어 프랑스의 학회는 이제 하늘에서 돌들이 떨어졌다는 보고에는 대응하지 않고 그냥 무시해 버리기로 결정했지요. 몇몇 고대어가철을 간혹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질로 정의하고 있다는 지적에도 그 학회는 결정을 철회하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파리 근처에서 꽤 큰 규모의 유성우가 내려서 몇 천 개의 작은 운석들이 쏟아져 내렸을 때에야 비로소 자신의 입장을 철회했지요.”

 

과학은 사실확인 조차도 까다롭다. 그래서 드물게 일어나는 일은 다루기 어려워한다. 물론 그 흔적을 남긴다면 오랜세월 축적이 되어서 확인할 수 있지만 위의 유성우와 같이 떨어지고 난 뒤에는 땅에 원래 있던 건지 하늘에서 떨어진 건지 구분할 수 없는, 즉 현장을 목격해야만 확인이 가능한 것은 다루기가 힘들다. 하지만 확인이 어렵다고 해서 온갖 신이한 현상에 대해서 당신이 목격하지 못했을 뿐 그 현상을 실제한다라는 태도를 취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보어가 그의 결과들을 계산이나 증명이 아닌, 직관과 추측을 통해서 얻었다는 것, 이제 그것들을 수학에 능통한 괴팅겐의 학자들 앞에서 변호하는 것을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이 여실히 느껴졌다.”

 

그 대단한 보어도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는 것이 인상적이면서 위안을 준다. 위키에 폰 노이만을 보면 폰 노이만과 리차드 파인만은 둘 다 천재이지만 다른 부류의 천재라고 언급되어있다. 보어는 아마도 현상의 철학적 해석이라는 부분에서 천재였다고 생각한다. 똑 같은 입자물리학을 하는 천재 물리학자들 사이에서도 각자 뛰어난 특성이 다르다. 위대한 물리학자를 꿈꾸는 학생들은 남을 닮을 생각보다는 자신만의 천재성을 발휘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동질의 물질의 존재, 고체의 존재, 이 모든 것은 원자의 안정성에 기초하고 있어요.

 ……중략……

물질의 안정성 때문에 뉴턴역학은 원자 내부에서는 통할 수가 없어요

 

고전역학과 양자역학의 차이점, 고전역학의 한계에 대한 보어의 직관을 보여준다. 고체의 단단함과 구리는 구리로서 철은 철로서 안정적으로 존재하는 것과 같은 화학적 안정성에 대해서 보어는 신비함을 느꼈고 이것이 고전역학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고전역학은 물체에 대해서만 다루었지 물질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을 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듣고보니 너무 당연한 질문이어서 내가 왜 진작 이것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지 않았는지 스스로가 한심스러워졌다. 문제를 해결하진 못하더라도 적어도 질문은 던질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 밖에 2차세계대전이라는 시대상황에 대해서 정치적인 견해들이 많이 나왔는데 나치가 지배하는 독일에서 생활하던 하이젠베르크였기에 실제로 어떠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진실한 것같기도 하고 뭔가 변명조같기도 하다. 어느 에피소드에서는 보어가 실제 대화내용은 그렇지 않았다고 한 것도 있으니 더욱 의심스럽다. 

그래도 양자역학의 발전 과정에서  어떻게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았는지 그 과정을 볼 수 있는 것만해도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