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해하고 있는 걸까?

2020. 8. 10. 23:03노트

'나는 이것을 이해하고 있는걸까?'

'개념을 이해해야한다', '원리를 이해해야한다' 질릴 정도로 자주 듣는 말입니다. 그런데 공부를 한 뒤 '내가 과연 이걸 이해하고 있는걸까?'하고 되돌아보면 아리송해집니다. 이해하는 것같기도 하고 못하고 있는 것같기도 합니다. 모르는 어른들은 "자기가 아는지 모르는지도 모른단 말이냐!?"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겁니다. 하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모르는 사람도 대다수죠. 자기가 뭘하고 싶은지 모르는 것처럼 자기가 이해하고 있는지 아닌지도 스스로 모를 때가 많습니다.(설마 나만 그런건 아니겠죠?;;;) 개념 원리를 이해하는 학습이 그렇게 강조되는 것도 실제로는 잘 실천되지 않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실천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이해하는지 스스로도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는 것이 이해하는 공부인가를 말하기 전에 내가 무언가를 공부했을 때 그것을 이해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지 스스로 점검해보는 방법에 대해서 몇가지만 짚어보려고합니다.

 

1. 상식으로 분해가 가능한가?

모든 지식은 상식으로 분해가 가능해야합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보이는 어려운 지식도 결국에는 상식으로 분해가 가능합니다. 반대로 상식을 쌓고 쌓아서 지식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학자들이 하는 일이라는 것이 상식을 쌓아올려서 놀라운 결론에 도달하는 일입니다. 수학의 경우에는 단순한 공리로부터 시작해서 논리적인 단계를 통해서 증명을 하여 새로운 수학적 사실에 도달합니다. 과학자는 실험과 추론을 통해서 결과를 얻습니다.

예를 들어 러더포드의 알파입자 산란 실험의 경우, 금박(금을 얇게 펴서 만든 막)에 알파입자를 쏘았는데 대부분의 알파입자가 금박을 통과했는데 소수의 알파입자가 거의 정반대 방향으로 튕겨져나오는 것이 관찰되었습니다. 그래서 금 원자는 질량의 대부분이 중심에 집중되어있고 나머지 부분은 텅 비어있을 것이다. 금 원자가 그러니 다른 원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라고 추론하게 됩니다. 

어떤 지식이건 편견과 선입견을 배제하고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상식으로 분해할 수 있다면 "나는 그것을 이해하고 있다"라고 생각해도 될겁니다. 

 

주의 : 첫째, 무엇이 상식이고 무엇이 상식이 아닌지 구분할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물리학을 공부할 때 소위 만유인력의 법칙이라고 하는 중력법칙을 배우죠. \( F=G \frac{Mm}{r^2} \) 중에서 \( G \frac{M}{r^2} \) 을 중력장이라고 합니다. 질량 M인 물체는 중력장을 만들어내고 이 중력장 안에 있는 질량 m인 물체는 중력법칙에 따라서 힘을 받죠. 여기서 상식적인 안목이 있으면 비판적으로 질문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태양이 뙁하고 생기면 그 즉시 전 우주에 태양에서 비롯된 중력장이 순간적으로 뙁 생기는 겁니다. 원격적인 작용이 순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죠. 이거 뭔가 이상해 보이지 않습니까? 실제로 뉴턴이 중력이론을 발표했을 당시 마냥 환영받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이 중력법칙에서 즉각적으로 원격작용이 일어나는 부분을 두고 "마법과 같다"면서 비판받았습니다.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다른 부분에서 워낙에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일단 그냥 사용하긴 했습니다만 후에 상대성이론이 나오면서 그것이 올바른 비판이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이러한 안목은 바로 습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훈련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평소 공부할 때 자꾸자꾸 상식으로 분해하려는 노력을 하면 점점 비판적인 안목이 생기게 됩니다.

 

둘째, 어느 지점까지 파고 들어야할지 애매합니다. 원인은 또 다른 어떤 원인의 결과인 것이고 그런식으로 원인의 원인, 원인의 원인의 원인 등등등으로 끊임없이 어어져 갈 것이고 그러다보면 끝이 없습니다. 과연 어느 지점에서 멈추어야할까요? 그것에 대해서 명확한 정답은 없습니다. 하지만 제 기준에서의 답을 하자면 "이 이상은 전문적인 공부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지점까지 파고들면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위의 만유인력의 법칙으로 돌아가봅시다. 만약 어느 고등학생이 선생님에게 "선생님, 중력법칙에 의하면 태양이 뿅하고 사라지면 그 즉시 전 우주에 퍼져있던 태양으로부터 비롯되던 중력장도 뿅하고 사라지는 것 아닙니까? 그건 뭔가 이상해보이는군요"라고 묻는다면 선생님은 일반상대성이론을 설명해주는 대신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겁니다. "잘 보았다. 그런 즉각적인 작용은 없고 그런 부분에서 뉴턴의 중력법칙은 틀렸다. 후에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이론이라는 중력이론을 발표했고 일반상대성이론은 그 부분을 잘 설명해준다. 일반상대론은 대학교 4학년 수준으로 아주 어려운 이론이니 그냥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설명한다라고만 알아두면 될거다"라고 말입니다.

 

2. 인과관계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가?

결과에 대해서는 항상 그에 맞는 원인이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되는가? 어떻게 그렇게 되는가?라고 물었을 때 우리는 항상 대답할 수 있어야합니다. 그리고 그 답변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상식적이어야합니다. 

인과 관계에 대한 설명 없이 습득한 지식을 단편적 지식이라고 합니다. 암기식 공부의 폐해입니다. 지식은 관계성을 가짐으로 인해서 의미를 가집니다. 개념이라는 것은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관계 안에서 정의되는 것이고 원리라는 것도 결국에는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관계'라는 의미입니다.

인과관계에 대해서 말할 수 있다면 이해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의 : 1번 상식적이어야 한다는 부분과 연결해서 인과관계는 상식적인 선에서 이루어져야합니다. 예를 들어서 일본에 태풍이 몰아쳐서 큰 피해가 났다고 칩시다. 그런 뉴스의 댓글을 보면 '일본이 우리나라에 나쁜짓을 많이 해서 벌을 받는군'이라는 글이 자주 보입니다. 일본이 우리나라에 나쁜짓을 많이 한 것도 사실이고, 일본에 태풍이 불어 피해가 발생한 것도 사실이지만 둘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없습니다. 따라서 "나쁜짓이 원인이고 태풍이 결과다" 라는 식으로 그저 이름붙이기만 해서는 인과관계를 파악했다고 할 수 없고 그것이 상식적이어야 인과관계를 파악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부분도 마찬가지로 훈련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훈련이고 해내야합니다.

 

3. 친구가 설명해 달라고 했을 때 설명할 수 있는가?

설명이라는 것은 대충 떠들어댄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아는 것을 명료하게 하고 그 과정에서 각 단계를 논리적으로 연결시킬 수 있어야 설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2번 인과관계와 연결됩니다.

TV에서 토론 프로그램 같은 것을 보면 내가 머릿속으로 희미하게 갖고 있던 생각을 토론참가자가 명료하게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제대로 아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간단하게 설명할 수 없다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아는 것과 설명하는 것은 같은 것이라는 것을 명심합시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 공부 안하던 친구들도 갑자기 열심히 공부를 합니다. 그리고 공부 잘하는 사람에겐 친구들이 와서 이것저것 물어봅니다. 그러면 그 공부 잘하는 사람은 설명을 해줍니다. 이렇게 설명을 함으로써 공부 잘하는 사람도 같이 공부하게 됩니다. 희미하게 알고 있었던 것을 보다 명료하게 알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물어보는 사람보다 대답해주는 사람이 더 이득을 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공부를 잘 하게 되었을 때 친구들이 와서 물어보면 친절하게 설명해줍시다. 정말 좋은 공부법입니다.

아무도 물어봐주지 않을때 무엇인가에 대해서 내가 알고 있는지 아닌지 테스트하고 싶다면 모르는 사람이 물어본다고 상정하고 머릿속으로 설명을 해봅시다. 설명이 조리있고 막힘이 없다고 여겨진다면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될겁니다.

 

주의 : 이 설명이 나만 이해하는 설명일 수도 있습니다. 정작 친구에게 설명을 해봤는데 친구가 "무슨 말하는지 모르겠는데?", 혹은 "그건 좀 이상한데?"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땐 보통 "나의 이해"에 정말로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혹시나 누군가 나에게 뭔가 질문을 하여서 내가 타인에게 무언가 설명할 기회가 생긴다면 고맙게 여기고 최선을 다해서 설명해보도록 합시다. 그리고 그가 과연 나의 설명에 납득을 하는지, 이상하다 여기는지, 피드백을 받아보도록 합시다.

 

4. 문제를 풀어보고 스스로 테스트해보자.

가장 기계적인 방법입니다. 하지만 가장 실전적인 방법이기도 합니다. 이 방법은 말 그대로 문제집을 풀어보고 얼마나 맞추는지를 확인해보는 겁니다. 이 방법으로 어떤 구체적인 지식에 대해서 내가 아는지 모르는지 알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문제집의 문제는 모든 내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일부 내용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가 1챕터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가'하는 식으로 일정 영역에 대해서 내가 얼마나 아는지 확인해볼 수는 있을겁니다. 

이렇게 문제집을 풀어보고 점수를 매겨봄으로써 확인해보는 방법(사실 셀프 시험과 똑같다)은 문제집을 많이 풀 수록 위력을 발휘합니다. 한권 두권 정도로는 잘 모릅니다만 세권 네권 넘어가면 차츰 나의 이해가 증진되고 있다는 것이 동그라미의 갯수로 눈에 보입니다. 동그라미의 빈도수가 늘어가면 재미가 붙고 성적향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집니다. 롤플레잉 게임을 오래도록 지속할 수 있는건 레벨, 스테이터스 등으로 성장이 눈에 가시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문제집은 나의 성장을 눈으로 보여줌으로써 의욕을 북돋워줍니다.

 

주의 : 단순 암기, 혹은 단순한 스킬(문제풀이 테크닉)으로 문제풀이를 잘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은 깊이 있는 이해가 아닌걸 다 아실겁니다. 따라서 문제풀이로 깊이 있는 이해를 측정하는 것은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아에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이해에도 얕고 깊음이 있습니다. 알긴 아는데 깊이가 얕다면 그리고 그런식으로 지식을 얻는 습관이 붙어버린다면, 지금 당장에는 문제가 없을 지라도 후에 무언가를 깊이 이해하는데 치명적인 걸림돌이 됩니다.

어지간히 급하지 않은 이상 문제풀이식 공부법을 너무 기계적으로 하지는 않도록 합시다.

 

종합하자면 1.상식으로 분해하여 2.인과관계를 명확히 알고 3.남에게 충분히 납득이 가도록 설명할 수 있다면 그것을 이해하고 있는 겁니다. 이 방법이 어렵다면 문제집을 시험지 삼아 스스로 테스트해보면서 눈으로 확인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위의 방법들은 전부 완전히 명료한 것도 아니고 헛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략 이해의 느낌을 아는데 이용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두 가지 평등  (0) 2021.06.14
과학을 연구하는 이유  (0) 2021.06.06
학교 공부는 왜 하는 걸까?  (0) 2020.07.10
빅토리녹스 미니챔프(victorinox minichamp)  (0) 2020.05.25
거버 스플라이스  (0) 2020.04.30